1. 손해보기 싫어서
2024년 8월 36일부터 tvn 월화 드라마로 12회 방영되었던 작품입니다.
'손절'이라는 개념이 인간관계에 통용되는 시대에 '손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 작품입니다.
우선 여주인공 이름부터 보면요, 손 해영으로 읽으면 흔한 이름 중 하나가 되지만
손해 영으로 읽으면 손해 제로에 도전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손해영은 무남독녀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손해보는 것을 싫어했고, 그만큼 남에게 손해끼치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손해영의 부모님은 위탁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참 다양하게 아픈 사정을 가진 아이들이 해영의 엄마에게 와서 머물다 갔습니다.
해영의 엄마는 항상 그들을 안으며, 와 줘서 고마워라고 말을 했죠.
아버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해영의 아버지는 해영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만 위탁아를 찾으러 온 사람의 칼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해영은 이것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엄마 곁을 떠나죠.
언제나 엄마를 그들에게 빼앗겼다는 손해의식이 있었습니다.
그 손해의식때문에 일상 생활에서는 손해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꿀비교육의 팀장으로 뛰어난 업무 실력을 가진 해영은 그 실력에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혼이었기 때문이죠. 그 회사는 교육회사였는데
기혼인 직원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었습니다.
해영은 프로젝트를 위해 위장 결혼을 계획하고 심지어는 중고마켓에서 신랑을 구한다는 광고까지
내게 됩니다. 해영의 집근처에 있는 편의점 알바였던 지욱은 해영이 이상한 사람에게 걸릴까봐
자신이 그 역할을 맡아주기로 합니다.
지욱은 그야말로 천사표였는데요. 사실 그는 재벌의 혼외자로 친모는 캐나다에서 목회자와
결혼해서 그곳에 있었습니다. 지욱의 할머니는 결코 엄마에게 해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엄마를 못만나게 하죠.
늘 존재를 부정당하고 살았지만 지욱은 정말 선량한 영웅이었습니다.
그 둘이 서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드라마입니다.
2. 살인자의 딸로 살아가는 남자연과 다중연애를 즐기던 차희성의 사랑
아이러니하게 무남독녀 해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자연과 희성이었습니다.
해영은 그들을 친자매 이상으로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심지어 자연은 해영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딸이었는데 해영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연과 함께 삽니다. 자연만 이 사실을 몰랐죠.
해영은 자연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붙들어 주지 않으면 안되었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죠.
또 희성 역시 위탁아 였는데 엄마가 돌본 위탁아 중에 유일하게 곁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영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돌보았는데 둘만 남았다고 엄마가 손해보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희성은 10년 이상 사귀던 태영이 있었으나 둘은 다자 연애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희성이 그만 아이를 갖게 되죠.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자연은 자신들과 같은 운명을 물려주면 안된다고 이야기하지만 희성은 낳기로 결심하고
태영이 자신이 아버지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영이 잠시 흔들리는 눈빛을 하자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결국 마지막회에 이르러서 둘은 다시 재결합합니다.
반면 자연 역시 웹소설로 살인자의 딸이라는 아픔을 딛고 꿋꿋이 살아가게 되는데요.
해영이 크게 도움을 줍니다.
3. 손해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해영은 지욱을 사랑하게 되는데 지욱 역시 위탁아였습니다.
모든 것을 숨겼다는 사실에 분노한 해영은 지욱과 헤어지지만 그를 못잊어합니다.
결국 돌아온 지욱에게 고백하고 말죠.
그렇게 본다면 해영 옆에 있는 사람들은 해영이 그렇게 손해라고 생각했던 위탁가정의 열매들이었습니다.
사람을 남기고 사랑을 남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이익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영의 엄마가 위탁 가정을 운영한 것은 그렇게 손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영의 엄마는 정말 아이들을 사랑해서 했거든요.
그렇게 사랑에 기초해서 한 일에는 손해의식이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무감으로 하는 일은 어떤가요?
이래야 된다는 신념으로 하는 일은 도리어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좋아서 하는 일에는 아무리 돈을 써도 아깝지가 않죠.
그런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하고 난 뒤에는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더라구요.
하지만 써 봐야 그 사람을 진정 좋아했는지 아니였는지도 알 수 있으니
그런 관점을 가진다면 우리의 모든 생활들은 손해를 본다기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잘 정리한다면 손해는 없는 것일겁니다.